[ESG 세상] 착한 경영, 이제 선택 아닌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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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 <기자말>
3월 3일 러시아에서 코카콜라를 유통하는 코카콜라헬레닉은 러시아 내 협력사와 수천 명의 직원들에 책임을 지기 위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영업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다국적기업의 러시아 철수를 요구한 소비자들은 즉각 반응했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확산된 '코카콜라 불매운동' 해시태그는 트위터 내 인기 검색어에 오르며 코카콜라에 대한 비난이 확산됐다. 러시아 내 847개의 직영점을 소유한 맥도날드도 영업 지속 방침으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2]
코카콜라는 서둘러 3월 8일 영업을 중단하며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으로 고통받는 모든 이와 함께하겠다는 성명을 냈다.[3] 같은 날 맥도날드도 러시아 영업을 중단하되 러시아 내 직원 6만 2000여 명에게 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4]
▲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맥도날드 매장이 식음료를 사려는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세계적 패스트푸드 체인점을 운영하는 미국 맥도날드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서 영업을 전면 중단한다고 전날 발표했다. 이 '러시아 보이콧'에는 코카콜라, 펩시, 스타벅스, 루이비통, 샤넬, 프라다. 구찌,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이 동참했다. 2022.3.10 |
ⓒ 연합뉴스 |
시장 외 현안인 인권이 기업 경영에 영향을 미친 지는 오래됐다. 인권 경영이란 말이 낯설지 않다.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항의해 남아공에 진출한 타국 기업에 투자 철회 등 압력을 가한 적이 있지만, 최근 들어선 더 광범위하고 집중적인 비난과 행동이 기업을 향한다.
2020년 BBC의 폭로로 중국 정부가 위구르족을 강제 동원해 면화를 생산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세계의 다수 기업이 발 빠르게 신장 면화 불매에 들어간 배경이다. 아무리 덩치가 큰 기업도 인터넷과 SNS로 연결된 소비자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는 시대기 때문이다.
면화 강제 노동
신장 자치구는 인도에 이어 세계 면화 생산 2위 국가인 중국의 면화 산업 중심지다. <글로벌 타임스>에 의하면 2020년 신장에서 생산된 면화는 약 230만 베일(1베일=218kg)에 달한다. 중국에서 생산된 면화의 87%, 전 세계 생산량의 약 20%에 해당한다.[5]
2020년 미국 국제정책센터(Center for Global Policy)의 보고서는 신장 면화가 위구르족을 포함한 소수민족을 강제 동원한 결과물이라고 밝혔다.[6] 이 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57만 명에 이르는 소수민족 노동력이 중국 정부에 의해 면화 따기 작업에 강제로 동원됐다. 이들은 신장 내 현지 작업팀을 통해 작업량을 강제 배당 받았으며, 할당된 노동량을 채우는 동안 엄격한 감시를 받았다.
▲ 목화밭 |
ⓒ Morguefile |
BBC 등의 폭로가 이어지자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나우는 강제 노동을 명확하게 부정할 수 없는 한, 즉시 중국과 거래를 끊어야 한다고 다국적 의류 업체들에 호소했다.[7] 이는 국제 정치에 파장을 미쳤다. 미국 등 여러 국가가 이 문제로 중국에 대한 규제에 들어갔다. 2021년 1월 미국 트럼프 정부는 중국 신장 지역에서 생산된 태양광 패널 재료, 토마토, 면화의 수입을 금지했다.
미국 새 정부의 기조도 비슷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12월 '위구르족 강제노동 금지법안'을 통과시키며 한층 압박을 강화했다. 이 법은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만들어진 모든 제품의 수입을 금지한다. 신장 지역에서 제조된 모든 제품을 강제 노동 생산품으로 전제하는 일응 추정(Rebuttable presumption)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수입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물품이 강제 노동으로 생산되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에 제출되어야 한다.[8]
유럽연합(EU) 또한 신장에서 인권 침해에 관련 있다고 판단되는 4명의 관리와 신장에 설치된 국가기관인 생산건설병단 공안국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EU가 중국의 인권 침해를 직접 제재한 것은 32년 만으로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에 따른 무기 금수 후 처음이다.[9]
국제 사회의 이러한 흐름에 따라 신장 면화를 사용한 글로벌 의류 브랜드인 H&M, 나이키, 아디다스 등이 2021년부터 신장 면화 사용을 중단한 상태다. 세계 면직 산업에서 인권과 환경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비영리조직인 '더 나은 면화 계획(BCI, Better Cotton Initiative)에 가입된 기업들이다.[10]
영국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다국적 기업들이 인권을 중시하는 자국 소비자들과 중국의 거대 시장 중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생산 시장은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장점을 자랑하나 서구 사회와 정치적 격차가 크고 인권 문제에 상대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다.[11]
다국적 기업의 탈 중국화와 원료 공급처 다변화는 기존 글로벌밸류체인(GVC)과는 반대되는 현상이다. GVC는 각국의 기업이 분업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원자재 및 부품 조달, 제품 생산을 이행하고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전달하는 글로벌 공급망을 뜻한다.[12] 중국 중심의 GVC는 비상사태시에 다국적 기업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원자재 조달 등을 다변화하여 국가 간 갈등, 코로나19, 자연재해 등의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움직임이 '역(逆) GVC'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의 규제가 외교적 압박을 위한 구실일 뿐이며 인권 침해는 없다고 주장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인권을 핑계로 중국 내정에 간섭하고, 허위 정보로 중국을 공격하는 데 반대한다고 말했다.[13]
▲ 목화밭으로 향하는 노동자들 |
ⓒ Unsplash |
우즈베키스탄 결국...
나이키와 H&M 등 다국적 의류 브랜드는 우즈베키스탄의 면화 수확 강제 노동이 세계적인 논란이 됐을 때도 우즈베키스탄 면화의 사용을 중단했다.[14] 우즈베키스탄은 2013년 기준으로 세계 목화 6대 생산국이자 5대 수출국이었다.[15]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국가의 주요 수출품인 목화를 수확하기 위해 국민을 강제 동원했으며, 여기에 아동과 환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 노동부는 우즈베키스탄의 목화를 아동 노동으로 생산된 제품 목록에 올리고 수입을 규제했다.[16]
미국의 시민단체 코튼 캠페인(Cotton Campaign)은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강제 동원되고 있다고 추정하고, 우즈베키스탄 정부에 기본적 노동권 확보를 촉구했다.[17] 코튼 캠페인은 동시에 2007년부터 관련된 기업을 상대로 강제 노동의 산물인 우즈베키스탄 면화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
한국조폐공사는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과 합작으로 우즈베키스탄에 '글로벌콤스코대우'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면 펄프를 공급받아 화폐를 만들어 국제 시민단체인 워크프리(Walk Free Foundation)와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비판을 받았다.[18]
우즈베키스탄의 면화 수출량은 2014년 260만 베일에서 불매의 영향으로 2016년에는 3분의 1 미만인 80만 베일로 급감했다.[19] 우즈베키스탄 면화 불매에는 전 세계 331개 업체가 참여했다.[20]
국제 사회의 제재와 331개 기업의 불매를 거쳐 우즈베키스탄은 2020년 미국 노동부로부터 자국 내 강제 노동이 종식되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21] 국제노동기구(ILO)도 2021년 작성된 ILO 제3자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우즈베키스탄의 강제 노동이 중단되었다고 밝히고는 2022년 3월 우즈베키스탄 목화 불매 캠페인을 해제했다. ILO는 우즈베키스탄이 강제 노동을 근절하도록 법률을 정비하고 사회적 대화와 단체 교섭 관행이 확립되도록 2013년부터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협력했다고 설명했다.[22]
▲ 다국적 의류 브랜드의 모자 |
ⓒ Morguefile ? |
정부, 기업 및 투자자와 협력을 꾀하는 면화 강제노동 근절 연합인 '책임 있는 자원조달 네트워크(RSN, RESPONSIBLE SOURCING NETWORK)는 보고서 '방적기에 이르기까지-면화조달의 책임 조달 체계 수립을 제안하며(To the Spinner: Forging a Chain to Responsible Cotton Sourcing)'를 통해 우즈베키스탄의 강제 노동과 아동 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의류업계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관행을 다뤘다.[23][24] 인권 위험 지역을 파악하고 원산지의 정확한 상태 확인을 위한 감사 체계를 만들어 "강제노동 또는 아동노동이 없는 목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국가 못지않은 경제력과 인적 자원을 지니고 정치적 역량까지 행사하는 다국적 기업이 지구촌의 노동과 인권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25] 유엔인권이사회(UNHRC)가 2011년 6월 '유엔 기업과 인권에 관한 이행원칙(UNGPs)'을 채택한 이유다. UNGPs 채택 이후 기업의 인권 경영 의제가 확산되며 경영 현장에서 주요한 고려 사항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기업의 적극적 보호 의무 강화가 꾸준히 논의되기도 한다.[26]
2019년 글로벌 금융 기업 UBS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69%는 윤리 경영을 하는 회사의 제품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27] 나아가 71%의 소비자는 환경, 지배구조 등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표명했다. USB 악셀 베버 회장은 "소비자의 윤리적 소비 패턴이 강화하였기에 기업의 윤리 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라고 말했다.[28]
신장 면화 사용 중단으로 중국에서는 나이키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중국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나이키의 전 세계 매출은 유지됐고 주가 또한 상승세를 보였다.[29] 인권 경영이 기업에 최소한 독배는 아닌 셈이다.
글: 안치용 ESG코리아 공동대표, 김유승 바람저널리스트, 이윤진 ESG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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