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관리
스트레스
제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내가 저를 몰아세우는 말을 할 때마다 서로 언성이 높아지다가 급기야 싸움으로 번지곤 하는데요. 얼마전에 TV를 보다가 아내의 이런 행동이 \'가스라이팅\'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인에게 털어 놓자니 속 좁은 남편이 되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혹시 정말 제가 잘못한 건 아닌지 혼자서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그러다 언제부턴가 아내를 상대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멀어졌습니다. 제 마음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요?
윤혜진 코치의 솔루션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자신의 우월감을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는 말로 상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를 과장해서 피해자 역할을 자청하기도 하지요. 이처럼 상대방이 자신을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어서 상대방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려는 행동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어요?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어머, 내가 그럴 리 없잖아. 당신이 오해했겠지.”
“당신도 알지? 당신 성격이 좀 예민해.”

이런 말을 들으면 한두 번은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자꾸 반복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때로는 아무런 의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때, 친밀한 관계에 있는 상대방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합리한 말에도 일단 수긍하게 되고 이런 식으로 잘못을 떠안는 상황에 서서히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A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무슨 소리야?
B 어? 잘못 들었나? 아닌데…분명히 들었는데…
A ...
B 미안해.

A 어머, 내가 그럴 리 없잖아. 당신이 오해했겠지. 요즘 왜 그래?
B 그래, 우리 사이에 그럴 리 없지…내가 이상한 건가?
A ...
B 미안해.

A 당신 요즘 좀 예민해.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나 정말 힘들어.
B 그렇지… 내가 좀 예민한 편이지...
A ...
B 미안해.

이처럼 매번 어느 한쪽에서 불편한 상황을 책임져야 하는 관계는 옆에서 부추기지 않아도 언젠가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남아서 결국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가스라이팅의 대상은 사랑하는 배우자일 수도 있고 자녀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식스 센스급의 반전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등장하는데 초반에 이들은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지내면서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오히려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마찬가지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도 의존적인 자녀와 집착하는 배우자 때문에 힘들다고 하소연하지만 정작 상대방을 그렇게 만든 것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쪽에서는 상대방의 죄책감을 이용하고 다른 한쪽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불편한 감정을 억지로 참아내면서 잘못된 방법으로 서로에게 길들여집니다. 그리고 습관적인 관계는 몸에 배어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지요.

가스라이팅이 항상 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을 자극하는 것이 통하지 않을 때는 동정심이나 죄책감을 유발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기도 합니다. 사소한 일로 다툰 뒤에 대화로 해결하기보다는 피해자인 상태로 남아있으려고 하거나 자신의 불쌍한 처지를 과장하여 과한 요구를 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관계는 얼핏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확실해 보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사연을 털어놓는다면 당장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고 좋은 상대를 찾아 떠나라고 말하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가 불편한 관계에서 빨리 빠져나오라고 조언하고 있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관계에서 상처’받는’ 쪽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닌데요.’라는 하소연으로 시작하는 이메일과 댓글들을 읽다 보면 가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단정 지으며 관계를 포기해 버리거나, ‘그런 부류의 인간과는 관계를 끝내버리라’는 통쾌한 조언으로 대리만족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의 통쾌함으로 관계가 개선되거나 불편한 관계를 손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때 자신도 한때 누군가에게는 상처 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상대방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무조건 상대방을 탓하는 것은 관계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동적으로 만들지요. 큰맘 먹고 능동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그 관계는 충분히 좋아질 수 있습니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의지를 갖고 노력하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여기서 ‘노력’과 ‘의지’는 일방적으로 참고 버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설령 본성은 변하지 않더라도 관계 속에서의 ‘그 사람’은 한순간에 변하기도 합니다. 현대 정신분석 이론에서 영향력 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코헛Heinz Kohut의 자기 심리학self psychology에서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감이 발달한다고 봅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심각한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도 가까운 사람의 정서적 지지를 통해 충분히 회복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약점과 직면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르시시스트에게 변화의 계기를 만드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다만, 관계를 더는 악화시키지않고 그가 스스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물론 그의 삶이 변하는 것을 도울 수 있습니다. 다음 세 가지를 염두에 두고 함께 고민한다면 관계를 개선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첫째,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거나, 그가 비난하는 상대를 함께 비난하지 않기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의견에 무조건 따라주면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에 따르는 상황에 만족하며 관계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할 것입니다. 게다가 누군가를 비난하는 말에 맞장구치다 보면 마음이 불편한 것은 물론 함께 험담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약점으로 작용하기 쉽지요. 한 번 편을 들어주기 시작하면 여기서 벗어나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나르시시스트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둘째, 의견에 곧바로 반박하거나, 그가 비난하는 상대를 면전에서 두둔하지 않기
의견에 단호하게 맞서면 그들은 자신이 비난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동안 항상 그들의 의견에 동조해 왔다면 그들은 상대방을 다시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단지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싶어 합니다. 관심이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주변으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해 상황을 과장하고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거짓을 꾸며내기도 합니다. 나르시시스트를 인내심 있게 지켜보는 동안 자신과 자신의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함께 필요한 이유입니다.

셋째, 잘못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기
피해자의 모습으로 둔갑할 타이밍을 기다리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자리를 내주기 좋은 행동입니다. 그들은 문제점이 드러나면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오히려 자기합리화에 열을 올립니다. 이들에게 선의로 조언을 했다가는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늘어놓는 궤변을 듣다가 엉뚱하게 사과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라면 잘못을 곧바로 지적하기보다는 넌지시 알리거나 사실만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읽고 쓰는 편의를 위해 ‘나르시시스트’라고 표현했지만 여기 있는 증상이 모두 질병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우리는 어쩌면 갈등을 피하려고 사랑과 돌봄을 핑계로 상대방을 감싸면서 그의 나르시시즘을 부추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로 인해 자신의 마음까지도 병들어 간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관계를 개선하기는커녕 자기 자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합니다. 상대방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도 자신을 스스로 지키면서 그가 자신을 바로 보도록 돕는 것입니다.
윤혜진 코치
KAC / K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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